스톤헨지 Stonehenge, 중세 세계 7대 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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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Stonehenge, 중세 세계 7대 불가사의

액트 2019. 8. 6.

스톤헨지 Stonehenge 중세 세계 7대 불가사의


스톤헨지(영어: Stonehenge)는 영국 남부 윌트셔 주 솔즈베리(Salisbury) 평원과 에이브버리에 있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에 있는 환상 열석 유적이다. 높이 8미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 여든여개가 세워져 있다. 수수께끼의 선사시대 유적으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려지지 않고 있다.

 

스톤헨지에 사용된 석재는 셰일과 블루스톤(휘록암과 유문암)이다. 이 두 종류 암석으로 이루어진 스톤헨지는 바깥쪽 원을 셰일 서클, 안쪽 원을 블루스톤 서클이라고 부른다.

셰일 서클은 셰일을 30개 세운 다음 그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 원을 그리도록 배치했으며, 안쪽의 블루스톤 서클은 크기가 작고 모양도 나 쓰러져 중앙에 제단처럼 자리하게 된 블루스톤이 있다. 셰일 서클 바깥에는 Y홀, Z홀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덩이들이 원을 그리듯 파여 있다. 또 그 바깥쪽에는 오브리 홀이라는 56개의 구덩이들이 파여 있으며 그 뒤로는 두개의 입석이 정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

셰일 서클 바깥에서 떨어진 곳에 힐스톤이라는 돌이 혼자 서있고 이 돌과 셰일 서클 사이에 도살석이라는 돌이 있다. 이 돌들은 모두 태양의 빛에 관련하여 일직선으로 놓아져 있는데, 이 때문에 해시계였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만들어진 연대는 대략 기원전 3000년부터 2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예부터 숱한 사람들이 스톤헨지에 관심을 가져 그것의 기원, 용도, 목적을 궁금해하였다. 옛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으므로 스톤헨지를 소재로한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겼다. 그런 전설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명한 마법사 멀린이 스톤헨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멀린이 사자(死者)를 기리는 기념비를 만들기 위해 스톤헨지를 아일랜드로부터 가져왔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스톤헨지의 재료가 되는 돌들이 바다 건너 다른 곳에서 수입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시사한다. 리스(Rhys) 박사는 스톤헨지가 종교적 의식을 위한 자리였고, 그곳에서는 뮈르딘(Myrddin. 멀린의 웨일즈식 이름)을 숭배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주장한다.

스톤헨지의 구조는 특정한 시간을 표시하도록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로마의 역사가 디오도루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는 스톤헨지가 19년마다 그곳을 방문하는 태양의 신을 위해 지어졌다고 서술했다.

오늘날에는 보스턴 대학의 제랄드 홉킨스(Gerald Hawkins) 교수 등이 디오도루스 시쿨루스의 학설을 더욱 발전시켜 스톤헨지의 구1조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천체(天體)의 움직임이 밀접하게 연관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스톤헨지에서 바치는 제물'에 대한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높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소문은 거의 근거가 없고, 실제로 스톤헨지에서 희생제가 행해졌을 가능성은 무척 적다.

스톤헨지에서 제물이 바쳐진다는 이야기는 주로 후대에 브리튼 섬으로 건너온 민족[8]들의 민간 전승에 기반된 것인데, 그것은 최근까지도 '살육의 제단'이라 불렸던, 길게 눕혀진 돌에 근거를 두었다. 그 돌이 마치 제단처럼 보여서 그 위에 희생물을 눕혀 놓고 숨을 끊기에 알맞다고 생각들 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 '돌제단'이 사실은 제단이 아니라 스톤헨지를 이루고 있던 '돌기둥'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그 돌은 처음부터 제단 같은 모양으로 눕힌 것이 아니라, 다른 돌들처럼 세로로 서 있던 돌기둥이 쓰러져 우연히 제단과 비슷한 형태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스톤헨지의 제단'에 근거한 모든 전설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스톤헨지에 있던 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집을 지을 목적으로 가져가서 돌기둥 여러 개가 빠져있는 모양새다. 콜로세움과 비슷한데, 둘 다 시간은 극복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은 극복할 수는 없었나 보다.

최근 주목받는 설은 스톤헨지가 '죽은 자를 위한 성역'이라는 것이다. 스톤헨지 북동쪽으로 스톤헨지와 구조가 거의 똑같은, 다만 돌이 아닌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있었기에 그 터를 '우드헨지'라고 부르는데[9], 우드헨지를 산 자의 공간, 스톤헨지를 죽은 자의 공간으로 삼아 특정한 절기에 사람들이 모여 스톤헨지와 우드헨지를 오가며 종교적 행위를 했다는 설이다. 사람들이 스톤헨지와 우드헨지를 오갈 때 사용됐으리라고 추정되는 길의 일부가 지금도 스톤헨지에 남아 있다. 또한, 스톤헨지의 구조가 동지, 하지에 해가 뜨고 지는 위치를 중요하게 표시하는 것으로 보아, 역시 동지/하짓날에 모여 이러한 의례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스톤헨지 쪽에는 도로와 도랑이 있는데 모두 일출 방향과 일치한다. 그런데 도로는 인공적이지만 도랑은 먼 옛날 빙하시대로 인한 흔적이다. 즉 오래 전 빙하기 때 자연적으로 도랑이 생겼고, 훗날 스톤헨지가 세워진 시기 즈음에 사람들이 이걸 보고 "어? 이거 방향 좀 봐라? 신비한데?" 하며 이곳에 죽은 자를 위한 종교적 장소로 스톤헨지를 세우고 도로도 놓았다는 것이다.

2019년 4월에는 DNA 조사 결과 이 거석들을 세운 이들은 BC 4000년쯤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로부터 지중해를 건너 영국에 이른 농민들의 후손으로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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