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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중세 세계 7대 불가사의

액트 2019. 9. 9.

만리장성


만리장성

 흉노족, 몽골인, 만주족 등의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국의 고대 진나라(시황제) 때 기존의 성곽을 잇고 부족한 부분은 새롭게 축조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북방에 건축한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다.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유적이다. 

만리장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만 리보다 조금 더 길며,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이 아니라, '장성'이라고 부른다. 동쪽 끝은 허베이성의 산해관(산하이관)이며 서쪽 끝은 간쑤성의 가욕관(자위관)이다.

 

 

만리장성 (1907년 청나라 말기)

만리장성을 줄여서 장성이라고 하며, 중국인들도 만리장성이라 부르지 않고 장성이라 부른다. 현재 남아 있는 장성의 유적은 허베이성(河北省) 산해관(山海關)에서부터 간쑤 성(甘肅省) 가욕관에 이른다.

지도상의 연장은 약 2,700km이지만, 기복이 있거나 중첩된 부분을 고려한다면 총 길이 5,000~6,000km에 달한다. 그 거대함 때문에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고 거론되었으나 2004년 12월 8일 중국과학원은 사람의 눈으로는 우주 공간에서 만리장성을 관측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만리장성 위치

 

진한(秦漢)대의 장성

장성의 기원은 춘추 시대의 제(齊)에서 시작되어 전국 시대에 들어오면 초(楚)·위(魏)·연(燕)·조(趙)·진(秦) 등 북방의 이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국가들이 국경에 북방의 방어를 위해 장성을 쌓았다. 한, 제 등은 북방의 이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쌓은 장성은 초나라를 막기 위해 중국 본토 안에 건설되었다. 기원전 222년에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중국 안에 있던 장성은 파괴하고 흉노를 방어하기 위하여 북쪽에 만들어졌던 여러 성들을 보수하고 서로 연결시켜 장성을 쌓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몽염 장군에게 장성을 쌓도록 명하여 기원전 214년 경에 완성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요동(현재의 랴오닝 성)에 이르렀고 서쪽은 임조(臨洮, 현재의 간쑤 성 민 현)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근에 발견된 츠펑 시 등지의 유적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장성은 현재보다는 북방에 위치하였다. 이후 한나라의 무제는 흉노를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장성을 서쪽의 옥문관까지 확장시켰다. 후한 시기에는 흉노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이후 수백년 동안 장성의 개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의 장성은 현존하는 장성과는 위치도 전혀 다르고 쌓는 방법도 달랐다. 현재의 장성보다 더 북쪽에 위치하며, 대부분 흙으로 쌓은 것이기에 현재의 만리장성과 달리 높이도 낮았다. 이 당시의 만리장성은 긴 장벽 형태의 성벽뿐 아니라, 국경 초소나 보루, 요새 등으로만 이루어진 구간도 다수 존재했으며, 성벽이 끊긴 곳도 있었다. 북방민족과의 경계가 아닌 요동 남부 등에 설치된 만리장성은 본격적인 성벽이라기 보다는 전진기지 성격의 요새가 대부분이다.

 

장성의 개축

남북조 시대에 화북을 통일한 북위는 북방의 유연을 방어하기 위해 원래 장성의 위치보다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았다. 이것이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의 기초가 되었다. 수나라는 통일 이후에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오르도스 지방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당대에는 북방을 경영하고 북방의 이민족을 지배하면서 만리장성은 유명무실해졌다. 이후에는 반대로 이민족인 거란, 여진, 몽골 등이 지속적으로 공격해와 장성 너머에 영토를 가지게 되면서 만리장성은 무력화되고 방치되었다. 그러나 거란의 요나 여진의 금은 다른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싱안링 산맥 등지에 새롭게 장성을 수축하기도 하였다.

원을 몰아내고 명이 세워진 뒤 원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강화하고 신축하여 지금 형태의 장성이 되었다. 영락제 때부터 건설을 시작한 만리장성은 북위 및 북제의 장성이 기초가 되었으며, 오르도스 남쪽 수나라의 장성도 활용되었다. 주로 북경 인근의 동단을 중심으로 축성된 명나라의 만리장성은 가정제 연간에 몽골의 침입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견고하게 건설되었으며, 서쪽의 장성들도 지속적으로 개축되어 16세기 말에 비로소 지금의 장성이 모두 완성되었다.

 

현황

현재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을 중요한 역사적 문화재로서 보호하고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시켰다. 세계 유수의 관광 명소로 이름이 높았으나, 지역 주민이 집의 재료나 관광객에 판매하기 위해 장성의 벽돌을 갖고 돌아갔기에 파괴가 지속되었다. 또한 댐 공사로 인해 일부가 물에 잠기기도 하였다. 장성 주변의 감숙성과 섬서성(陝西省)은 중국에서도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당국은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6년 4월에 열린 중국의 학술단체 중국장성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만리장성이 안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지역은 전체의 20% 이하이고, 일부 현재 존재하는 지역도 30%이고, 남은 50% 이상은 모습이 사라졌다"라고 보고되었다.

만리장성 중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는 베이징 부근의 팔달령 장성(八达岭长城)이다. 수도인 베이징에서 80km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장점과 함께 용이 춤을 추는 듯한 역동적인 형상 때문에 팔달령은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구글맵 만리장성

역시나 보이지가 않는다. 

진시황제의 불로장생초

언급되었듯이 만리장성은 단순히 한 사람, 한 왕조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건축 시도 끝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대중매체에서는 진시황의 폭정을 언급할 때 '만리장성을 무리하게 축조하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여 넣기 때문에 진시황에 의한 축조가 가장 유명하다. 특히나 그중에서 초한지의 영향으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설화로 '망진자호(亡秦者胡)'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시황제는 말년에 늙지 않고 죽지 않게 만드는 불로장생초를 얻기 위해 온갖 미신을 믿고 다녔는데, 황해를 넘은 땅에는 삼신산이 있어 수많은 선인들이 칩거하고 있으며 그곳에 불로장생의 영약이 숨겨져있다는 방술사(方術士)들의 말을 들은 진시황은 그중 한 명인 서복(徐福)에게 그 영약을 찾아올 것을 명했다. 서복은 영약을 위해서는 남녀 동자 500명과 금은보화가 필요하다 했고 시황제는 흔쾌히 수락했으며, 서복은 그 길로 불로장생초를 구하기 위해 떠났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이 사라진 지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시황제는 불안하여 노생(盧生)이라는 다른 방술사를 보내어 서복을 찾게 했는데, 노생은 삼신산 중 하나인 봉래산에서 선문고(羨門高)라는 선인을 만나 '이 책에 담긴 뜻을 해석해내면 능히 불로장생의 비결을 얻고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천록비결(天簏秘訣)이라는 책을 건네받았다. 노생은 천록비결을 진시황에게 바쳤으나 천록비결은 수많은 은어로 이루어져 도저히 읽을 수 없었고, 시황은 수많은 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천록비결을 해독하고자 했다. 그 뜻을 해독해내는 데에는 결국 실패했으나, 천신만고 끝에 '망진자호(亡秦者胡)'라는 한 글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시황제는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오랑캐(胡)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만리장성으로 북방의 오랑캐를 막고자 했으나, 胡는 오랑캐가 아니라 이세황제 호해(胡亥)를 뜻하는 것이었고 진나라는 호해에 의해 망하게 되었다는 설화이다.

야사이므로 실제로 이런 일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며 바리에이션도 꽤 있다. 신선이 건네준 책에서 비롯된 글귀가 아니라 단순히 점쟁이가 내려준 글귀였다는 설도 있으며, 정치적 문제를 덮을 목적으로 외부의 적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당시 진나라의 상황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덕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다.

 

열녀 맹강녀 설화

만리장성과 얽힌 중국의 유명한 설화로 열녀 맹강녀 설화가 있다. 진시황 때 만리장성 건설 인부로 끌려간 남편에게 겨울옷을 갖다주기 위해 옛 제나라 땅에서부터 먼 길을 걸어온 맹강녀라는 여인이, 남편이 이미 죽고 시신은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구덩이에 쌓인 해골 무더기에 흘리자 피가 스며드는 해골이 있었고 맹강녀는 그 해골이 남편의 해골이라고 확신, 장례를 치룬 뒤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다는 것.

조금 각색된 설화로는 맹강녀의 남편이 단순 인부가 아니라 인신공양 제물로 진시황에게 직접 살해되었고 맹강녀의 미모를 탐낸 진시황이 맹강녀를 강간하려 하자 맹강녀가 자결하는 순간 만리장성에 벼락이 내려 무너졌다는 변형도 있다. 맹강녀가 죽은 곳이 산해관 근처라 하여 지금도 그곳에 맹강녀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다른 버전으로 공사 현장에 갔는데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맹강녀가 주저앉아 며칠을 통곡했는데, 하늘이 그 한을 알아봤는지 갑자기 그 근처의 만리장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는 결말도 있다. 기껏 지어놓은 성이 무너졌으니 소식을 들은 진시황은 뒷목을 잡았으리라. 

우주에서 보인다

요약하면, 빌딩 꼭대기에서 길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보인다고 하는 말과 같다.

만리장성은 사실 길이는 길지만 폭이 좁으므로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저 위의 사진도 줌기능으로 당겨서 본 거지, 본래 사진을 보면 그냥 안 보인다.

본래 이 말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유명한 천문학 책인 코스모스에서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실은 오늘날(1980년) 지구를 선회하는 인공위성에서 식별할 수 있는 지구의 유일한 거대 (인공)지형지물이다'라는 문구가 달로 와전된 경우로 보인다. 실제로는 그 이전 문헌에도 기록이 있다. 당연하지만, 중국인 최초로 유인 우주선에 탄 양 리웨이는 지구 바깥에선 그 어느 건물도 그 어느 것도 안 보였다고 말하면서 칼 세이건의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에 널려있는 아파트들, 공원 운동장들조차도 만리장성보다는 폭이 넓다.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아파트나 운동장보다 더 안 보이는 게 만리장성이라는 것.

 

기타

  • 거리가 거리인 만큼 만리장성을 걸어서 완주하는 것은 중국 내에서도 대단하다고 보도되는 일이다. 사람이 있는 관광구역이야 당연히 관리가 잘 되지만,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면 관리가 되지 않아 무너질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위험한 데다 인가도 없고 각종 야생동물과 독초가 득시글대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어지간한 등산보다 험난해서 조난 사고도 많고, 2012년에는 폭설로 인해 만리장성 등산에 오른 일본인 관광객 3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단지 완성된 성을 따라 걷는 일만도 이러한데 그 비탈지고 긴 거리를 따라 성을 축조한 당시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해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올 노릇이다.

  • 수나라의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2대 대공사 작품이라고 하지만, 대운하는 당시부터 오늘날까지도 진짜진짜 유용하게 잘 쓰이는 것에 비해 만리장성은 청대 이후 기능이 거진 장식화되었고 오늘날엔 그냥 관광자원일 따름이다. 물론 관광업도 우습게 볼 게 아니라 잘만 하면 큰 자본 들이지 않고 어마어마한 돈을 얻을수 있는 산업이고, 그런 관광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게 바로 만리장성처럼 '그 나라에밖에 없는 유니크한 역사유적'이기 때문에 결코 폄하할 수는 없긴 하다. 

  • 현재까지의 천문 관측에 의하면, 우주는 텅 빈 공간을 거대 은하단들이 마치 벽처럼 채워놓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구조를 만리장성(great wa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한국에서는 남녀가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을 비유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민화의 내용 줄거리는 "길가던 행인이 날이 저물어 어느 여염집에서 하룻밤 묵게 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그날 밤 집 여주인이 행인과 하룻 밤을 함께 보내며 만리장성에 노역을 나간 남편에게 편지를 전해달라 부탁하였고 마침 행인이 그곳을 지나갈 참이라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행인은 만리장성에 도착하여 그곳 감시관에게 편지를 전하였는데 편지의 내용인 즉슨, 이 사람이 남편과 교대하기로 한 사람이오니 남편을 집으로 보내주시오 하는 내용이었고 행인은 노역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내용." 이것이 "하룻밤이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의 어원이라고 한다.

  • 현재 만리장성의 벽의 80% 정도가 훼손되어있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슨 이름낙서. 만리장성의 벽은 기본이고 케이블카의 벽과 유리 부분에 낙서가 많이 되어있다고 한다. 심지어 낙서를 칼로 판 후에 판 곳을 화이트 등으로 채우는 등신 같은 짓을 해서 복구도 힘들게 한다고 한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유산이기 전에 세계문화유산이어서 개인이 훼손 시 최소 160만 원에서 최대 8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되어있다. 그러니 낙서하면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망신에 집안망신이므로 절대 하지 말자. 자기 나라의 유산에 누군가 낙서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까? 실제로 한글 낙서들을 알아본 중국인이 이를 인터넷에 올려 공론화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기도 했다. 게다가 안 그래도 전술된 낙서와 자연적인 풍화로 성벽이 점차 소실되어 가고 있는 상황인데 지역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묘지에 석재로 쓰려고 만리장성의 벽돌을 훔쳐가는가 하면, 심지어는 기념품으로 벽돌을 뽑아가는 관광객이나 작정하고 기념품으로 팔아먹을 목적으로 벽돌을 훔치는 장사꾼들까지 나오는 막장화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 중국의 핵전쟁용 지하 요새들을 가리켜 지하 만리장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6.25 전쟁 때도 지하 만리장성이라 부르는 급조 지하 시설을 구축하여 미군 화력 방어용으로 써먹었다.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화력으로 중공군을 쓸어버리던 UN군도 고전하고 전쟁을 휴전으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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