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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액트 2019. 7. 29.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또는 알렉산드리의 파로스 등대는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2세에 의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섬에 세워진 거대한 등대이다. 

 

이 등대가 워낙 유명해지다보니 파로스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등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되어 버렸다. 

 

100m에 달하는 높이를 갖고 있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여담으로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었다고 하나, 해당 불가사의를 맨 처음 선정한 안티파트로스는 알렉산드리아에 살다보니 매일 보는 이 등대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이게 아니라 바빌론 성벽을 선정했다고 한다. 


등대는 기원후 956년과 1323년 사이의 거대한 대지진으로 인해 파괴되어 돌무더기로 변하고 말았다. 고대의 불가사의들 중 3번째로 오래 살아남았으며(첫 번째는 이집트의 대피라미드, 두 번째는 마우솔로스의 영묘), 1480년까지 그 잔해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카이트베이 요새를 지으며 그 석조 잔해가 사라졌고, 파로스 등대는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발견

1968년, 유네스코는 일련의 수중 고고학자들을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 파견하였고, 이 조사로 인해 등대의 잔해가 세상에 처음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이 군사 지역으로 지정되고, 고고학자들의 인력 부족으로 이 발굴은 잠정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1994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장이브 앙페레가 알렉산드리아 동쪽 항구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를 발견하였고 1995년 공개하였다. 확실한 사진을 얻기 위해 특수 제작된 카메라를 이용하였고, 이로 인해 수중에서 무너진 기둥과 벽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주요한 발견으로는 49~60톤에 달하는 석회암과, 30개의 스핑크스, 5개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또한 복구를 통해 람세스 2세 당시의 유물을 다시 복원하기까지 하였다. 이 유물들은 현재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또다른 고고학자가 반대편 항구를 수색하였고, 지진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신전과 주거지역의 잔해를 발견하였다. 현재 다이빙으로 이 잔해들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가능하며, 유네스코와 이집트 정부는 이 유적들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 

 

건축

파로스 섬은 나일 삼각주 서부에 위치한 작은 섬이었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알렉산드리아를 세웠고, 후에 알렉산드리아와 파로스 섬을 1200m가 넘는 돌다리로 이었다. 다리의 동쪽은 거대한 항구로 번성하였고, 서쪽에는 안쪽 분지를 확장하여 만든 유노스타스 항구가 들어섰다.

 

파로스 등대는 기원전 3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이자 헬레니즘-이집트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에 의해 건축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여 자신을 소테르(구원자 라는 뜻)로 칭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 부근의 파로스 섬에 등대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등대의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대에 이르러 완공되었고, 약 800탈렌트의 은이 들어갔다고 한다.

등대의 빛은 등대 상부의 화로에 의해 만들어졌고, 등대의 대부분은 백색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아랍인들은 이 등대에 대한 많은 기록들을 남겼는데, 모두 이 등대가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고 말한다. 기록에서는 등대가 높이는 약 103~108m, 가로 길이 약 20m정도로 기록하였다. 아랍인들은 등대가 밝은 백색의 석회암으로 지어져 있었다고 썼고,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첫 번째 층은 사각형, 두 번째 층은 팔각형, 세 번째 층은 원통형의 모습으로 지어졌다고 하였다. 아랍 지리학자 알 이디리시는 1100년도에 그가 등대를 직접 보고 난 후의 소감을 작성했는데, 그는 등대의 기저부의 벽돌들이 납으로 인해 서로 단단히 결합되어 있었고, 그 높이는 약 162m정도로 추정하였다.


등대의 꼭대기에는 거대한 거울이 있어 낮에는 햇빛을 반사하여 빛을 냈고, 밤에는 불을 붙여 빛을 밝혔다. 등대 옥상의 네 모서리에는 트리톤의 석상이 세워져 있었으며,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포세이돈 혹은 제우스의 신상이 항구를 굽어보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바다와 접하는 면에는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헌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파괴

796년 맨 꼭대기 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파괴되었다. 그 뒤로 아랍인들은 등대 팔각형의 중간 부분 위에 등댓불을 설치하여 사용하였다. 950년과 956년, 2회에 걸쳐서 팔각형 중간 부분의 외벽에 큰 금이 갔다. 그 금은 건물의 안정을 위협했기에 어쩔 수 없이 팔각형의 중간 부분을 철거해야 했고 이 부분의 해체로 등대의 높이는 22m가 줄어버렸다. 이 후 1100년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이때 반사경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모의 단계를 거쳤지만 등대 건물은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서 1183년 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주바일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1303년과 1323년의 대지진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참고로 이븐 바투타는 1349년 다시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면서 등대를 보러 갔으나 그 때는 이미 등대가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다. 바투타는 당시 술탄에게 건의하여 새로운 등대를 만들고자 했으나 결코 이뤄지지 못했고, 1480년 이집트의 술탄 카이타바이가 등대의 잔해로 카이타바이 요새를 만들면서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등대는 이미 8세기와 10세기의 지진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갈라지고 틈이 생기고 있었다. 판의 이동으로 인해 수많은 지진들이 이 지역 경계에서 발생하였으며, 1300년대의 지진으로 인해 거의 반파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0세기의 지진에 상부 20m정도가 무너져 내렸으며, 이를 복구하기 위해 원래의 동상 대신 이슬람 형식의 돔을 등대 꼭대기에 덮었다는 기록이 있다. 1303년에 크레타 섬에서 일어난 지진은 이미 약해져 있던 등대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후에 1480년 이집트의 술탄이 등대의 잔해를 중세 요새를 만드는 데 사용하며 완전히 파괴되었다.

한 10세기의 작가는 등대의 파괴에 관한 일화를 전하는데, 비잔틴 제국의 첩자가 등대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찾기 위해 당시 술탄의 환심을 산 후, 그의 허락을 받아 등대의 기초 부분을 완전히 파헤쳤기 때문에 등대가 무너졌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 첩자는 배로 안전하게 비잔틴 제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한다. 

 

 

복원

1978년부터 파로스의 등대를 현대식으로 다시 짓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015년에 이집트 정부가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의도로 등대의 자리에 마천루를 짓는 안을 검토했으나, 반대 의견이 많고, 현재까지 특별한 실행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처] 위키백과와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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